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악의 문제 (문단 편집) ==== 자유의지는 정말 악의 근원인가? ==== 모든 악이 자유의지로 인해서 나타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사이코패스]]만 보더라도 순수하게 자유의지 때문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이런 답은 악을 개인의 의지 문제로 국한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만하다. 어떤 이들은 선천적인 결함을 지닌 존재가 모두 악인이 된다는 것은 아니며, 장애가 있거나 뇌해부학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그들에게는 순수한 자유의지가 없냐고 주장한다. 단적으로 말해 왜 사이코패스와 장애인들의 자유의지가 우리와 같은 순수한 자유의지가 아니라고 멋대로 단정 짓는 것인가? 이다. 그러나 이것은 얕은 생각인데, 사이코패스는 의학적 정의상 공감 능력 자체가 없는 이들이다. 이들도 자유의지는 있다. 오히려 자유의지가 있는데 공감능력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자유에 따를 때 악을 행하게 되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다. 겉으로 선량하게 행동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그들 역시 악에 대한 처벌을 분명히 인지하기 때문이고, 자신의 천성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공감능력의 부재와 같은 것이다. 이것은 자유의지에 따라 그들이 선택한 특성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은 자유는 있지만 그 자유로 택하게 되는 것은 자유롭게 택할 수 없고, 그것의 궁극적 원인이 신이라면 책임을 물 수도 있는 것이다. 여차저차 하지만 무신론자들과 기독교인과의 기본적인 의식의 차이는 현실에서의 죽음과 고통이 '악'인가라는 질문을 통해서 갈리게 된다. 무신론자들은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는 사후의 보상으로 현실에서의 고통이나 죽음을 상쇄할 수 없고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위해 현재 이런 고통을 치르는 이유에 의문을 던지며, 기독교인들은 사후의 영생과 구원을 믿고 현세의 고통이나 죽음을 신의 의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관점을 받아들이면, 현세에서의 가치판단 기준이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나도 신의 의지로 받아들이면 끝이니 문제 해결에 적극적일 수가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또한, 이 부분에 대해 어폐라는 주장도 있다. 정말 오래 살았거나 미치지 않은 이상 고통과 죽음이 왔을 때 신을 원망하지 않는 자는 없다는 말인데,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원망할 대상이 필요한 것이 일반적인 사람으로서 당연하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운명이나 남을 원망하는 등 신자들이라면 그 대상이 신이 되기가 쉽다. 게다가 애초에 이 이야긴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관점에서 무신론자보다는 덜하다는 것이지 기독교인도 신을 원망하게 된다고 해서 어말이 되지 않는다. 사후세계를 믿는 사람이 죽으면 끝이라는 사람보다는 죽음에 대해 덜 나쁘게 받아들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무신론자 관점에서는 심판을 기다리는 죽은 자보다 오히려 걱정을 덜 한다고 본다. 또한 심판을 기다릴 필요 없이 진정한 '끝'으로 받아들이므로 실질적으로는 무신론자가 편안히 죽는다고 볼 수도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선과 악에 대한 판단 기준이 문화적, 사회적, 시대적, 정치적 배경에 따라 조금씩 바뀌는 것 때문에 개인의 자유의지와는 무관하게 악이 일어날 수 있다. 이 경우엔 선악에 과연 절대적 기준이 있는가 하는 점이 먼저 문제가 된다. 종교인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악의 판단 기준이 아니라 신의 뜻을 선의 기준으로 삼는다고는 하는데, 문제는 신의 뜻이랍시고 나오는 종교 교리조차도 문화적, 사회적, 시대적, 정치적 배경에 따라 바뀌어 왔다는 것이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신의 뜻이 변하면 안 된다는 것 또한 무신론자들이 만들어낸 편견일 뿐이라고 하는데, 사실 논점이 매우 어긋난 반박이다. 또한 근본적으로 기독교인들의 유일한 근거인 '[[성서무오설|성경은 100% 사실이다]]'가 무너진다 .여기서 말하는 변하는 교리란 것은 무슨 구원이나 심판에 대한 교리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런 건 어차피 종교인들에게만 중요한 내용이니 비종교인들이 그런 부분까지 문제삼는 경우는 드물다. 여기서 말하는 교리는 선악에 대한 부분, 윤리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약에서는 현대인의 눈으로 볼 때 비윤리적인 행위들이 많이 나오는데, 야훼가 그 당시에는 그런 행위들을 방조하거나 조장한 뒤에 이제 와서 변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한다면, 과연 그런 신이 선악을 논하는 것에 어떤 위엄이나 권위가 있겠냐는 말이다. 다른 부족을 공격해서 갓난아기까지 몰살시키는 행위에 대한 선악 판단이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그 판단 주체가 '''인간'''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신은? 이것 역시 기독교에서는 야훼가 당시 사람들의 문화와 윤리 수준을 맞춰준다고 한다. 당장 적은 삼대를 멸하고 여자는 끌고 가서 종으로 부리는게 아주 합당한 시절에서 불살주의를 주장하며 신약의 예수마냥 "다 용서해라."라고 한다면 어느 인간이 미쳤다고 신을 따르겠는가? 당시 유대 민족으로부터 자신의 거룩함과 영광을 알려 만민을 구원하려는 계획을 가진 야훼로서는 추후 자신의 계획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는 것들은 모두 제거하는 게 답이기는 하다. 대를 위하여 소를 희생하는 격. 심지어 당시만 해도 유대인들은 야훼가 주는 이익을 믿고 야훼를 따랐지 야훼가 신이라 따른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가나안 입성 전부터 삐긋거리더니 입성 후에는 뒤통수만 수십 번. 물론 이것도 같은 수준에서 반박이 가능하다. 애초에 신이 당시 사람들의 문화와 윤리 수준에 맞춰준다고 하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 전지전능한 신이 인간들을 일깨워주고 계몽하기는 커녕 비위를 맞춘다는 뜻이다. 누구보다 앞장서서 잘못된 윤리기준을 바로잡아야 할 신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스스로의 윤리, 도덕적 기준이 아닌 인간들의 윤리 기준에 맞춰준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무엇보다도 어느 인간이 감히 대홍수를 일으키고 도시를 통째로 불태우는 신이 말하는 것을 자신들의 문화에 어긋난다고 안 따를리가 없다. 신으로서의 위엄 한 번 선보이면 자신들의 문화고 뭐고 당장 따르지 않았을까? 심지어 아브라함은 신이 자신의 아들을 바치라고 하자 실제로 바치려 들었을 정도다. 도저히 이익을 믿고 따른 자의 행동이라고 볼 수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